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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서양음악-바로크시대의 기악

어제는 비가 하루종일 왔어요

 

어디를 가려구 계획을 했는데 못가구 가까운 곳 드라이브를 하고왔죠

 

계획은 안했지만 나름 괜찬은 시간이었습니다.

 

오늘은 바로크시대의 마지막 이야기 바로크시대의 기악에 대해서 알아볼까해요

 

 

 

1600년 이전은 성악의 시대라고도 할 정도로 성악의 전성기로서, 기악을 위한 것으로는

 

간단한 춤곡이나 성악곡의 편곡 정도밖에는 없었습니다다.

 

그러나 바로크 시대에 와서부터는 처음으로 기악이 성악과 자리를 같이하여,

 

기악형식이나 기악을 위한 새로운 형식이 확립되고 많은 기악곡이 나타났습니다.

 

기악형식의 대부분은 프랑스의 성악곡인 샹송이 이탈리아 사람에 의하여 기악으로 옮겨졌습니다.

 

이른바 '칸초네 프랑 체제'(프랑스풍 칸초네)를 기초로 하여 그것이 모노디의 발명과 결부되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독립된 기악형식으로 발전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우선 칸초나 가운데 대비적인 부분이 각각 독립하여 개개의 대조적인 악장을 취함으로써 카프리치오가 생겨났죠.

 

이것은 다른 여러 형식에 비하여 대위법적이며 푸가의 전신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모테토가 기악으로 옮겨진 리체르카레, 자유로운 대위법에 의한 즉흥적인 판타지 등도 푸가의 전신이었죠.

 

그리고 지로라모 프레스코발디(1583-1643)는 이러한 악곡에서 몇 개로 나뉜 대조적인 부분 사이의 주제를 통일하여

 

전체를 엄밀하고 유기적인 조직으로 하고 또한 그 주제에 기악적인 음형을 사용함으로써

 

모방적인 대위법의 기악곡을 만들어냈습니다.

 

그 뒤로 각 부분은 그 내부구조를 충실케 함으로써 그 수효를 줄이고 주제와 그 응답 사이에도

 

으뜸조와 딸림조라고 하는 기능적인 관계를 확립시켰습니다.

 

또 파헤르베르(1653-1706)에 의하여 주제가 들어가는 배분이 개량되고 에피소드가 조직적으로 편성되게 됩니다.

 

북독일의 북스테후데(1637-1707)도 토카타와 푸가에서 극적인 요소를 도입하였습니다.

 

이리하여 17세기 전반을 통하여 점차 푸가의 개개 요소가 성립하고,

 

바로크 시대의 후기에 오자 다른 대위법적 악곡을 누르고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습니다.

 

한편 칸초네에 의거하지 않는 악곡형식도 새로 생겼으며 특히 건반악기를 위한 여러 변주곡이 유행하고

 

저음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음형,

 

즉 오스티나토 바스에 기초를 둔 변주곡인 파사칼리아, 샤콘, 그라운도 등이 왕성하게 작곡되었습니다.

 

 

1. 소나타

A. 교회 소나타의 성립

 

건반악기를 위한 칸초네는 주제를 통일함으로써 푸가로 발전하였으나 기악 앙상블 편성에 의한 칸초네부터는

대조적인 각 부분이 각각 독립성을 갖게 되었고 또한 그 수효가 줄어들자 이에 따라 교회 소나타가 성립합니다.

이것은 흔히 느림-빠름-느림-빠름의 4악장으로 이루어지며 전체적으로는

장중하고 성실하며 또한 추상적인 형식입니다.

이 형식은 1650년부터 1750년의 약 백년 동안에 매우 애용되어 지오반니 바티스타 비타리, 주제페 트레를리,

그리고 17세기 최대의 걸물인 아프칸제로 코레리가 많은 작품을 남기고 있습니다.

 

B. 트리오 소나타

 

트리오 소나타는 일련의 춤곡으로 되어 있으며 보통은 알르망드-쿠랑트-사라반드-지그, 거기에 임의의 춤곡이나 자유로운 구성의 서곡이 부가되거나 또는 되지 않기도 합니다.

이러한 두 형식은 여러 악기편성을 위하여 작곡되었는데, 가장 애용된 것은 2개의 바이올린과 콘티누오의 편성이었죠. 이것을 악보로 보면 3개의 멜로디선으로 표기되므로 트리오 소나타라 하였으며

바로크 시대를 통하여 매우 애용된 실내악 형태였습니다.

이 밖에도 통주저음과 독주악기의 편성으로 된 솔로 소나타를 위한 작품도 남아 있습니다.

우수한 독주악기인 바이올린을 위한 곡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비올이나 비올라 다 감바, 오보에나 플루트 등을 위한 작품도 남아 있습니다.

2. 모음곡

 

몇 개의 춤곡을 결합시켜 구성하려는 시도는 이미 16세기부터 있었습니다.

즉 짝수박자의 것과 3박자의 것, 속도가 빠른 것과 느린 것이 결합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음곡의 초기 발전에 관해서는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은 바가 많으며 영국은 지그를, 스페인은 사라반드를,

프랑스는 그 밖의 많은 춤곡과 전체적인 세련성을, 그리고 독일은 알르망드와 모음곡을 통일된 형식으로

만든다는 생각을 상호간에 제공하여 마침내는 단순히 춤을 추기 위한 곡에서 벗어나

양식화된 예술형식으로 나아갔습니다.

모음곡이 음악형식으로 확립되기 위하여 큰 공헌을 한 사람은 프로베르거(1616-1667)인데,

그는 처음에 알르망드―쿠랑트-사라반드의 3악장 형식을 택했었습니다.

그 뒤로 지그가 추가되어 17세기 말엽에는 4악장형식이 널리 쓰였습니다.

연주형태로는 건반악기용의 것이 많았으나 관현악 모음곡,

실내악 편성으로 된 소나타 다 카메라도 이러한 장르에 들어갑니다.

 

3. 협주곡

A. 합주협주곡

 

바로크 시대의 가장 중요한 관현악 형식으로서 합주 협주곡(콘체르토 그로소, Concerto grosso)을 들 수 있다.

합주 협주곡이란 악곡의 형식의 하나로, 몇 개의 독주악기로 이루어진

소악기군인 콘체르티노와 보다 큰 합주단인 리피에노가 함께 하는 형식입니다.

예로는 헨델의 《콘체르토 그로소집》이 있으며, 또한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이 있습니다.

 

B. 독주협주곡

독주협주곡은 하나의 독주악기와 관현악으로 구성되는 것이 가장 일반적 형태인데,

독주악기에 따라 피아노 협주곡·바이올린 협주곡 등으로 불립니다.

합주협주곡과 다른 점은 독주악기가 보다 두드러진 움직임을 보이고 보다 오랜 시간 연주된다는 점이며,

교향곡에 맞먹을 정도의 깊은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형식입니다.

최초의 독주협주곡은 토렐리(1658-1709), 알비노니(1671-1750) 등에 의한 것인데 1700년경에 공개되었고

또한 비발디(1678경-1741)에 의해 확립되고 대규모의 형식으로 발전하였습니다.

그의 협주곡은 빠름-느림-빠름의 3악장으로 되어 있으며 각각 그 내부는 일련의 투티와 솔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비발디의 형식을 이어받은 사람으로는 제미니아니(1687-1763), 타르티니(1692-1770),

로카텔리, 헨델, 바흐, 텔레만 등을 들 수 있습니다.

4. 기악에 의한 교회음악

바로크 시대 이전에는 교회에서 연주되는 것이라면 거의가 예외없이 성악이었습니다.

기악양식과 새로운 기악형식의 성립, 그리고 각 악기 사이의 양식이 구별되기 시작한 이 시대부터

교회를 위한 새로운 기악형식이 생겨났습니다.

그리하여 신도들이 부르는 코랄을 위한 오르간 전주부에 중요한 의미가 주어져서 코랄 전주곡이라는

독립된 기악곡이 탄생하였습니다.

이 형식에 큰 공헌을 한 사람은 샤이트(1587-1654)로서 그에 의하여

오르간 음악의 기교적인 면은 완성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이 때문에 그 이후 바흐에 이르는 일련의 독일 오르간 음악의 거장들은 전적으로

코랄 전주곡의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내는 데 전념하였습니다.

파헬벨은 이 새로운 형식에 푸가를 곁들였으며, 뵘(1661-1735)은

코랄의 멜로디를 번뜩이는 듯한 섬세한 음표로 장식하였고,

또한 디트리히 북스테후데(1637-1707)는 코랄의 멜로디에서 나오는 소재를

자유롭게 환상적으로 다루는 코랄 판타지를 만들었습니다.

5. 바흐와 헨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초상화

 

바로크 시대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1685-1759)이 등장함으로써

절정을 이루어 일단 정리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이들 두 사람은 다른 17세기 초기의 대가들과는 달리 새로운 형식이나 양식을 만든 것이 아니라

기존의 요소를 각각 독자적인 방법으로 자기 것으로 소화시켜 완성시켰습니다.

이들은 모두가 독일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여러 나라 양식을 받아들여

혼합 또는 융합시켰다는 점에서도 일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애나 인격이 매우 다르듯이 음악도 여러 점에서 다르다는 점은 흥미있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우선 바흐는 일생을 통하여 국외에 나간 일이 없고 여행이라 해도 기껏해야 함부르크 정도였지만,

헨델은 독일, 이탈리아, 영국에서 그의 일생을 보냈으며 특히 마지막에는 영국에 귀화한 국제인이었습니다.

바흐는 두 번의 결혼에서 20명이나 되는 자녀를 두었고 끊임없이 신변의 자질구레한 잔근심으로

고민하였음에 반하여 헨델은 결혼도 하지 않고 항상 모험을 즐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흐가 독일에서도 이름높은 전통적 음악가의 집안에서 성장하였음에

반하여 헨델에겐 전혀 음악가 조상이 없었으며 또한 그가 음악가가 되려는 뜻을 부친은 완강하게 반대하였습니다.

인격 면에서도 바흐는 겸손하고 경건하며 때로는 완고했음에 비하여

헨델은 보다 세속적이며 겉보기에 화려하고 귀족적이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두 사람의 차이는 그대로 음악에도 나타났다고 합니다.

작곡에 쓰는 악곡형식으로서 바흐는 오페라를 제외하고는 당시 있었던 대부분의 형식을 다루었으나

역시 주력은 교회 칸타타나 오르간 작품 같은 교회 음악이라고 하겠습니다.

한편, 헨델의 대부분의 작품은 오페라와 오라토리오였는데, 그의 오라토리오는 매우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것으로

말하자면 종교적 제재에 의한 오페라 같은 것이었습니다.

또 바흐의 작품 대부분이 교회나 궁정에 근무할 때 요청에 따라 쓴 실리적인 것이었음에 비하여

헨델은 틈이 나는 대로 아무런 목적이나 필요성도 없이 작곡하였다는 점도 흥미롭다고 하겠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두 사람은 같은 독일 태생이며 태어난 해도 같은 그들이었지만 단 한번도 만나지 못 했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그들의 가문과 음악적 특성, 성격의 차이 때문에 만날 기회를 갖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바흐와 헨델은 독일에서 성장하고 그 전통을 익힌 뒤에 주위 여러 나라의 갖가지 양식을 받아들인 점에서는 모두가 공통되나 그것을 어떻게 혼합시키고 융합하여 자기 것으로 했느냐의 점에서 두 사람은 매우 다른 경지의 높이를

이룩하고 있는데, 그들이 취한 태도에서의 근본적인 차이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점에 집약된다고 하겠습니다.

첫째 두 사람이 모두 폴리포니의 대가이나, 바흐의 음악에서는 폴리포니가 지배적이며

헨델의 음악은 호모포니가 지배적이었습니다.

둘때 바흐의 성악곡의 최대 특징은 기악적이란 점에 있습니다.

즉 그 성악 멜로디는 종종 연주가 곤란할 정도로 기악의 이디엄에 가깝습니다.

한편, 헨델은 보다 성악적 표현법이 풍부한 작곡법을 택하며,

기악작품에서까지도 본질적으로는 성악의 이디엄 바탕으로 쓰고 있습니다

 

오늘 바로크시대의 기악을 알아보면서 그래도 익숙한 인물들이 등장을 많이해서

더 잼있었고 몰랐던 일들도 많이알아 그 시대가 떠올리곤 했죠

다음번 시간에는 고전파음악에 대해서 알아볼까합니다

그럼 모두들 다음번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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