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블루스(역사)
곧있음 저녁식사 시간이네요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항상 고민입니다
이러고 보면 여자분들이 항상 식사준비하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세삼느끼네요
예전에는 일일이 도시락을 쌓주셨는데 지금은
급식이 나오니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네요
배고파서 주절주러 거렸네요..ㅋㅋㅋ
오늘은 블루스 역사에대해 알아볼까합니다
처음 발매된 블루스는 1908년 안토니오 마지오의 〈I Got the Blues〉입니다.
그 뒤를 이어 하트 반드의 〈Dallas Blues〉가 1912년 발매되었고,
W.C. 핸디의 〈Memphis Blues〉가 같은 해에 나왔습니다.
처음으로 녹음된 아프리카계 미국인 가수는 마미 스미스, 1920년 페리 브래드포드의 〈Crazy Blues〉입니다.
하지만 블루스 기원은 10년 전쯤 일찍인데, 1890년도 정도로 추정됩니다.
블루스는 미국 남부 목화 농장의 노예들로부터 시작됩니다.
남북전쟁 이후, 농장에서 흑인 노예들에 의해 불리었던 할러, 혹은 노동요로 불리는
음악들은 농장제가 없어지면서 동시에 소멸되었지만, 아프리카적 요소들을 고스란히 도입하고 있던
이러한 음악들이 민스트럴 쇼, 교회에서 불리던 복음성가 등과 합쳐지면서 렉타임, 부기우기 등으로 발전 되었고,
블루스의 원류를 형성하는 음악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블루스는 본질적으로 아프리카적 미국 음악입니다.
그리고 블루스가 완전한 형태를 이룬 것 역시 농장제의 와해와 맞물린 19세기 후반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또한, 오늘날 블루스의 기본적인 형태인 12마디 블루스 역시 이 시기에 나타난 것으로 보이지만,
당시에 주로 쓰이던 형태는 12마디 블루스가 아닌, 8마디 블루스가 2번 나열되는 형태였습니다
블루스는 20세기 초, 남부 텍사스와 미국 남부에서부터 기록되기 시작됩니다.
찰스 피바디가 블루스는 미시시피의 크락스데일에서 나타났다 하고,
게이트 토마스는 1901~1902년 사이 남부 텍사스에서 매우 비슷한 노래가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두 사람의 말을 조합하면 어느 정도 일치하긴 하는데,
젤리 롤 모튼의 기억에 의하면 1902년 뉴올리언스에서 처음으로 블루스를 들었다 합니다.
(마 레이니, 그녀 또한 같은 해에 미주리에서 처음으로 블루스를 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W.C. 핸디 또한, 블루스를 1903년 미시시피의 트월러에서 들었다고 하는데, 그의 감상평은 이러했습니다.
"살면서 들은 것 중 제일 이상했던 음악이었습니다. The weirdest music I had ever heard." 처음으로 이것에 대해
광범위한 조사를 시작한 사람은 하워드 W. 오덤인데, 1905년에서 1908년 사이에 미시시피의 라파예트,
조지아의 뉴톤 카운티에서 방대한 포크 노래를 출판한 사람입니다.
첫 번째 비상업적 목적의 블루스는 폴 올리버의 〈Proto-Blues〉인데,
이것을 오덤이 20세기 초 연구 목적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전부 소실되었습니다
1924년 로렌스 겔러트에 의해 발매된 음반은 아직도 들을 수 있습니다.
이후, 미국 의회도서관 미국 포크송 기록 보관소의 의장이 된 로버트 W. 고든에 의해 음반이 더 많이 발매됩니다.
그의 후임으로 존 로맥스가 되는데. 1930년에 로맥스와 그의 아들 알렌은 실험정신을 가진
필드홀러, 링 샤우트와 같은 장르의 비상업성 블루스 음반을 많이 제작하였습니다.
현재까지도 찾아볼수있는 1920년대 이전 음악은 〈Lead Belly〉 와 〈Henry Thomas〉가 있습니다.
그들의 음악은 현존하는 12마디 블루스, 8마디 블루스, 16마디 블루스와는 전혀 다른 형식을 보여줍니다.
블루스가 나타나게 된 경제적, 사회적 이유는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첫 출현 시기를 보통 1870~1900년대 중 노예 해방 선언 이전, 혹은 주크 조인트가 생겨난 뒤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기들은 과도기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시기에 노예제도를 통한 노역, 작은 규모의 농업생산,
미국 남부에서 기차길이 확장된 것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몇몇 학자들은 1900년대 초반에 그룹의 의견보다는 개인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어 블루스가 발전된 것을 특징이라 봅니다.
그들의 사회 속 불만을 이용해 만들어진 블루스의 발전은 근대에 이루어진 노예 해방 선언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로렌스 라빈에 의하면-
"there was a direct relationship between the national ideological emphasis upon the individual, the popularity of Booker T. Washington's teachings, and the rise of the blues."
"개인에 대한 국가적 이념 강조와 유명한 부커 T. 워싱턴의 가르침, 블루스가 떠오르게 된 것, 모두 서로 직접적인 연결이 있었다."
"psychologically, socially, and economically, African-Americans were being acculturated in a way that would have been impossible during slavery, and it is hardly surprising that their secular music reflected this as much as their religious music did."
"정신적,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으로든 흑인들은 노예 생활동안 불가능하다 생각됐던 방식으로 문화에 적응하고 있었기에 속세에 대한 것들을 반영한 음악은 그들의 종교 음악 만큼이나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블루스와 재즈는 자주 논쟁거리로 언급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재즈가 블루스에서 파생되었다고 보거나, 재즈가 블루스의 시초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둘다 사실이 아닙니다.
블루스와 재즈는 마치 형제처럼 같이 양옆에서 자랐습니다.
블루스는 재즈의 기초 형성에 도움을 주었고, 재즈 혹은 블루스는 어느쪽에서든 파생되지 않았습니다.
정의로 구분짓자면, 블루스는 음악적 형태와, 장르, 재즈는 음악적 예술 형태입니다.
블루스는 코드 진행과 장르를 이 안에서 만들었다고 확신할 수 있지만, 재즈는 이것을 파악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19세기의 렉타임과 모던 퓨전 음악을 전부 포함하고 있어 범위가 매우 넓기 때문입니다.
블루스와 재즈는 이러한 점에서 차이점들이 있지만, 사실 공통점이 많습니다.
둘다 미국 남부 (Deep South)와 19세기 말에 만들어졌습니다.
블루스는 아프리카-아메리칸 그들의 노동요, 스피릿튜얼스, 필드 찬트 그리고 할러에서 왔습니다.
또한 특징인 코드 진행, 플랫, 혹은 밴드 노트, 블루 노트, 그리고 슬프고 우울한 가사가 있습니다.
재즈도 마찬가지로 남부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부터 나왔지만, 결과적으로 아프리카와 유럽 음악이 섞였습니다.
재즈 초기 당시 유명한 음악으로 인정받았고, 특색으로 블루 노트, 즉흥연주, 싱코페이션(당김음, 흔히들 싱코라고 하는 이것은 어울리는 한도 안에서 박자를 수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스윙 노트'를 알렸다. 재즈는 초기 뉴올리언스 딕시랜드, 스윙 시대의 빅 밴드 음악, 비밥, 라틴 재즈, 퓨전,
에시드 재즈, 펑크, 힙합, 그리고 당연히 블루스에게도 영향을 미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