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서양음악-낭만주의음악2

백마탄화안자 2021. 3. 5. 10:15

오늘은 하루종일 바쁘네요

괜히 이런전일 일때문에 할 일도 많고 알아볼일도 많고

나름 정신이 없네요^^

오늘은 낭만주의에 대해서 좀더 알아보려고합니다

1. 초기의 낭만파

고전파의 정점을 쌓아올린 베토벤이 또한 낭만파 활동의 이정표가 된 것은

그의 후기 작품의 내용으로나 낭만파의 많은 작곡가의 저술로도 명백합니다.

독일의 낭만주의는 우선 '슈투름 운트 드랑'이라는 1770-1780년경의 문학운동에서 싹이 텄으며,

그와 함께 시인이나 철학자의 사색에서 곧잘 음악관을 논하게 되었습니다.

음악적인 시인으로서는 E. T. A. 호프만이 낭만파의 성립에 관계한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음악 체험에 의하면 '음악은 인간에게 알려지지 않은 영역 외면적인 감각세계와는

아무런 공통점도 없는 세계를 개척해 주며, 사람은 전혀 추상적으로 특정한 감정을 뒤로 하여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것에 몸을 맡긴다'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그의 음악관의 구체적인 예로서 그 자신의 작품은 <운디네>를 비롯해서

현재는 역사서술 이외에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슈베르트와 카를 마리아 폰 베버가 초기낭만파의 대표자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A. 베버

 

카를 마리아 폰 베버(1786-1826)는 베토벤이 사망하기 1년 전에 이미 그의 일생을 마쳤으나

슈베르트보다도 훨씬 후기형에 속하는 낭만적 작곡가라 하겠습니다.

피아노곡·오페라·가곡·교회음악 등에서 상당히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1820년에 작곡되고 다음해 베를린에서 처음으로 공연된 오페라 <마탄의 사수>는

역사적으로 획기적인 의미를 지녔습니다.

그리고 5년 전에 같은 장소에서 공연된 E. T. A. 호프만의 <운디네>를

베버는 "어느 시대에도 결코 우리에게 줄 수 없었던 가장 정신적인 것으로

충만한 작품의 하나"라고 평하였으나, 호프만이나 슈포르의 작품이 아니라 바로 <마탄의 사수>가 획기적이라는

이유는 보다 개성적으로 강한 베버의 음악적 재능에 있습니다.

줄거리는 괴테도 지적했듯이 약간 유치하나, 장면을 진행시키는 멜로디나 훌륭한 관현악법 속에

독일 숲의 신비적인 분위기나 등장인물의 심리 등이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습니다.

여기서 호프만풍의 낭만적인 영역은 직접적으로는 전개되지 않습니다.

그 대신에 나중의 '낭만파 음악'이라 불리는 개념의 기초가 이룩되었던 것입니다.

베버는 또한 독일 징슈필의 형식에 따른 <마탄의 사수>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완전한 오페라 형식으로 독일 낭만주의적인 오페라 세리아의 작곡을 원했으나

결국 <오이뤼안테>나 <오베론>은 <마탄의 사수> 영역을 넘어서지는 못했습니다.

 

B. 슈포어

 

독일의 슈포어(1784-1859)는 19세기 전반 독일의 대표적 바이올리니스트로서 바이올린 협주곡이나

교향곡의 작곡을 남겼으며, <파우스트>나 <이에존다>와 같은

독일어의 국민적인 제재에 바탕을 둔 오페라를 써서 베버와 함께 국민 오페라에의 공헌자로서 유명합니다.

특히 <이에존다>는 교묘한 줄거리와 음악이 잘 융합되어 성공하였으며,

그것으로써 슈포어는 낭만파 음악가로서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C. 멘델스존

 

멘델스존(1809-1847)은 일반적으로 '낭만적인 고전파'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혜택받은 환경 아래에서 자란 균형잡힌 세련된 감각과 고전적 전통에 뿌리박은 교육으로

그의 작품이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도 모두 중용을 갖춘 온화한 작품을 지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의 걸작으로는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에 붙인 부수음악이나

회화적인 연주회용 서곡 <핑갈의 동굴>, 또는 요정의 경쾌함 같은 익살스러운 <스케르초>,

낭만적인 동경을 찬양한 합창곡, 피아노에 의한 노래라고도 할 수 있는 <무언가집>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또 멘델스존의 전통에 대한 깊은 이해로 바흐의 <마태 수난곡>이 부활되기도 했습니다.

이 전통에의 지향(志向)은 단순히 낡은 음악의 역사적 재생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선례를 규범으로 하여 오라토리오 <성 바오로>, <엘리야> 등의 걸작을 낳았습니다.

그는 낭만파의 표정이 풍부하고 우아한 멜로디와 바로크의 대형식을 결합시켜

리스트와 아울러 19세기의 종교적 오라토리오의 한 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 낭만파의 전성기

낭만주의 운동은 1820년대의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발전하습니다

낭만파의 전성기라고 할 경우에는 흔히 바그너 이후(19세기 후반)는 포함되지 않으며,

멘델스존, 슈만, 베를리오즈, 로시니, 쇼팽, 마이어베어 등을 중심으로 합니다.

이 시기에는 낭만파의 환상적인 성격이 각 방면에 화려하게 나타났으나

그 이면에는 악기, 특히 관악기의 개량이라는 눈에 띄지는 않으나 중요한 진보가 있었습니다.

낭만파 음악에서는 섬세한 감정의 반영으로서 화성은 내부에서 움직이기 쉬워지며,

그 결과 반음계적 진행이나 조바꿈의 부분이 자주 요청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와 병행하여서 목관이나 금관은 키 조작의 개량이나 밸브의 발명 등으로

그 경향에 응할 수 있을 만한 성능을 지닌 악기로 개량되었던 것입니다.

이 관현악법과 악기의 균형잡힌 상호관계는

색채의 감각에 눈뜬 낭만파 역사에서 가볍게 볼 수 없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A. 슈만

슈만(1810-1856)의 일생은 참으로 낭만적인 작곡가답다고 하겠습니다.

그는 잔 파울이나 프리드리히 리히터, E. T. A. 호프만 등의 문학이나 칸트의 철학을 이해했으며,

작곡가와 비평가라는 두 면에서 중요한 활동을 하였습니다.

작곡가로서의 슈만은 1830년대에 걸작이 많은 피아노곡으로 기초를 이룩하고,

그 뒤 해를 거듭하며 장르를 넓혀 가곡이나 교향곡, 피아노를 더한 실내악,

피아노 협주곡 등으로 대표되는 작품을 썼습니다.

가곡 분야에서는 슈베르트부터의 독일 리트(Lied)를 더욱 전개시켰으며, 기악곡 분야에서는

특히 피아노곡을 중심으로 시적인 세계에서 음악을 쓰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독일에 19세기의 표제 음악을 탄생시킨 사람은 슈만입니다.

다만 그때의 표제란 순수하게 환상적인 음악의 세계를 가져오게 하는 계기로서 작용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의 실내악이나 교향곡에는 작곡학적으로 보아 브람스의 작품에 통하는 요소를 많이 볼 수 있으며,

중요한 작품이 적지 않습니다.

낭만파에서는 호프만, 베를리오즈, 리스트, 바그너처럼 낭만적 음악비평의 저술을 남긴 사람이 많으나

<음악신보>라는 잡지를 창간한 슈만의 비평활동은 가장 개방적이고 공평하며,

역사에 관해서 충분히 암시적이라 하겠습니다.

그는 베토벤 숭배의 전통을 수립함과 동시에 슈베르트, 쇼팽, 베를리오즈,

리스트 등의 천재를 찬양하여 낭만파를 위해 싸웠습니다.

그러나 그 후 리스트, 바그너의 창작에 자기 이상과의 본질적인 차이를 시인해야만 했습니다.

그 뒤 1853년의 브람스와의 상봉으로 슈만은 훌륭한 찬사로써

그를 세상에 소개하여 그의 비평활동의 클라이맥스를 이루었습니다.

독일에서 19세기 전반(前半)의 정점을 이루는 슈베르트, 베버, 멘델스존, 슈포어, 슈만의 주변에는

호프만이나 베버, 슈만 등의 문필활동의 영향이 컸으며, 이에 힘입어 많은 작곡가가 나타났습니다.

기악음악의 분야에서는 M.하우프트만이나 I.모슈레스를 경계로 하여 소나타라는 전통적 형식은

별로 다뤄지지 않게 되었으며 대신 소규모의 작품이나 변주곡이 즐겨 작곡되었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그 배후는 시적인 것으로의 도피라는 소극성을 볼 수 있어 아류(亞流)가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소규모적 작품 분야인 성악곡에서는 K.레이베(1796-1869)가 있습니다.

슈베르트의 리트 2년 뒤에 그는 역시 리트인 <마왕>을 작곡하였으나,

마찬가지로 낭만적인 분위기의 세계를 표현하였다고는 하지만

정경묘사의 부분에서는 언어를 음악의 기초적 리듬으로 하는 관계로

장면의 변화가 현실적이며 다양하게 구사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오라토리오에도 낭만파적인 시도를 한 바 있습니다.

다음으로 오페라에서는 마르슈너, 로르칭, 니콜라이 등의 작품이 있으나,

그것들은 일단 호프만 또는 베버의 영향권 안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B.마르슈

하인리히 마르슈너(1795-1861)는 걸작을 3개 남겼습니다.

<반비아>, <성당의 기사와 유대 여인>에서는 호프만풍의 환상에서

바이런풍의 세계로 가는 도정(道程)을 느낄 수 있으며,

<한스 하이링>에서는 호프만이 <운디네>에서 결코 소화시킬 수 없었던

낭만파의 근본 테마인 인간 속의 초속성이란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이러한 특징에 더하여 그의 음악은 화성과 색채와의 신선한 혼합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C. 로르

로르칭(1801-1851)은 <운디네>, <레기나>, <안드레아스 호퍼> 등을 썼으며,

그 작품특징은 독일 징슈필(18세기 후반 이후 독일에서 상연되던 민속극 연극 형태로서 노래가 많이 삽입되어 있습니다)의 전통을 유지,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라 하겠습니다.

즉 독일어로 된 회화 오페라의 즐거움을 독일어로 추구하였던 것입니다.

 

D. 니콜라이

오토 니콜라이(1810-1849)의 대표작은 <윈저의 명랑한 아낙네들>이나

이 오페라의 친근감을 뒷받침해 주는 그의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독일의 악파는 첫째로 독일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경쾌함을 더할 수 있다면 더욱 바람직하다."

그는 모차르트를 이상으로 삼았습니다.

마르슈너나 로르칭과는 달리 니콜라이에 대해서는 이탈리아의 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